2025. 4. 27. 18:00ㆍ브런치북 - 창작자를 위한 AI
나 자신이 누군지도, 내 생각이 뭔지도 잘 모르는 현대인들.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해서 아는게 없다.
본인이 뭘 원하는지도 아주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후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누군가의 불명확한 생각을 명확한 이미지로 변환시켜주는 프로세스를 훈련해온 인간이다. 그렇기에 내게 디자인 작업을 주문하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이 디자이너에게 자신이 원하는 걸 주문할 때, 굉장히 모호한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있다는걸 자주 느낀다. 마치 어린왕자의 그림처럼, 관점에 따라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 될 수도, 그냥 모자가 될 수도 있는 정도의 애매모호함 말이다.

그래서인지 클라이언트에게 이미지 구현을 위해 필요한 질문들을 할 때마다 “어,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요?”, “그런 것 까지 제가 말 해줘야 해요?”, “오, 그렇네요. 그건 디자이너분께서 생각해주실 수 있나요” 같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라는 대답들을 하곤 했다.
재미있게도 그저 고객의 명확한 니즈를 알기 위해서 한 질문임에도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떠올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한 것 때문일까? 소수의 클라이언트는 약간 ‘발끈’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디자이너로서 고객에게 질문을 하고, 그것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이 자아성찰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내가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 어째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인데도, 막상 떠올리려면 또렷하게 떠오르질 않는 걸까?
- 왜 혼자서 생각할 때는 흐릿하던 이미지가, 상담을 진행하면서 점점 명확해져 가는 것일까?
내가 스스로 한 생각인데 왜 나 혼자서는 결코 명확하게 떠올리지를 못하는 것일까?
거울이 없으면, 당신은 스스로를 볼 수 없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전체적으로 떠올리는 그 애매모호한 이미지는 사실 혼자서 다듬기 매우 어렵다. 앞서 얘기했던 사례들도 내게 디자인을 주문했던 클라이언트들이 자아성찰이 부족했다거나, 생각이 짧다고 비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사람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과 그러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뿐이다. 자기 객관화라는 말을 요즘 많이들 사용하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외부와의 소통이라는 거울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서 당신이 헬스장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팔굽혀펴기나 턱걸이 등을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거울을 안 봤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유튜브 등에서 영상을 찾아보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자세를 교정하려고 시도하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엉터리같은 자세로 운동을 해왔는지 드디어 알게 된다. 팔굽혀펴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알고보니 팔굽혀보기 수준이고, 턱걸이도 전체 가동범위를 쓰지 않고 깔짝깔짝 하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계속 영상물을 보면서 본인의 동작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몸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면 올바르게 움직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몸이 느끼는 편한 자세와 역학적으로 올바른 자세는 다르고, 이걸 개선하기 위해서 자기 자세를 평소에 주의깊게 관찰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태어나서 평생 해 온 걷는 자세도, 매일 반복하는 앉는 자세도, 누군가의 지적이 없다면 점점 비뚤어져 허리디스크로 가는 지름길이 되곤 한다.
이처럼 자기 이해의 과정은 생각보다 외부로부터의 피드백을 많이 요구한다. 자신이 떠올린 이미지와 느낌을 구체화하기 위해선 누구와든 대화를 해야한다.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취조하듯 자세한 요소들을 물어보는 것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다.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정확한 이미지에 대해 고려한 적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면 ‘그럼 여기에는 가벼운 하늘색보다는 바다 느낌의 파란색이 어떠신가요?”, “아, 개화기 한국 느낌이라면, 오래된 신문지 텍스쳐를 활용해서 시대배경을 활용할수도 있는데 이 방법으로 이미지를 발전 시켜볼까요?”라는 식으로 제안한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디자이너 GPT라도 된 것 처럼 클라이언트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끌어내게 하기 위한 질문들을 자꾸 던진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던 불명확한 이미지를 내가 물어본 것들을 토대로 하나하나 다듬어서, 현실세계로 끌어올 수 있을만큼 구체화시킨다.
이 유사성을 이해하면 AI 챗봇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유튜브에서는 AI 사용법을 담은 영상들이 끊임없이 업로드 되지만, 생각 없이 그들의 요령만 베껴서는 발전할 수 없다. 창작자를 위한 AI 활용법은 별로 없기도 하고, 요령이라는 것은 특정 상황에만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에 응용도 어렵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저 AI를 자주 사용해보는 것이며, 매일 아침 출근 전에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듯,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확인하는 대화를 자주 해줘야 한다. AI에게 더 많은 피드백을 제공하여, AI가 나에 대해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소통을 시도해야만, 유튜버들이 알려주는 '방법론' 따위에서 벗어나 본인의 의도에 더 가까운 AI 활용을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순히 AI를 잘 쓰게 되는 것을 넘어, 뜻밖에도 당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여정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앞서 말했듯이 본인에게 필요한 게 뭔지 정확히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해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인 내가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읽듯, AI와의 대화는 어쩌면 당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AI가 거울이 되어준다면?

초기의 AI 챗봇들은 단발성 질의응답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전체적인 파악을 하지 못하고, 매번 새로운 채팅을 열 때마다 금붕어처럼 나에 대해 잊곤 했던 것이다.
ChatGPT 또한 출시 초반에는 "맞춤 설정"을 세팅할 때 내가 한국어를 사용하는지, 프로그래밍 지식이 어느 수준인지, 디자이너로서 어떤 툴을 선호하는지까지 일일이 써서 알려줘야 했다. 프로그래밍 질문에 쉽게 답변해달라거나,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설명해달라는 지침까지 모두 수동으로 입력해야 비로소 그에 맞게 대응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두 달쯤 전. 내가 사용하던 ChatGPT의 메모리가 한계에 도달했다. 화면에는 "메모리가 가득 찼습니다. 새 메모리가 생성되지 않습니다. 기존 메모리를 지워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었지만, 이 순간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동안 디자인 리서치부터 SF 소설 구상, 기술 트렌드 분석까지 내가 GPT와 나눈 수백 개의 대화가 그저 지나간 대화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GPT에게 축적되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 메모리 한계 알림을 마주하면서, 왜 GPT가 점점 다루기 편해졌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히 성능이 좋아진 것만이 아니라, 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하나하나 학습하며 나라는 사람을 이해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GPT는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파트너처럼 내가 어떤 답변 형식을 선호하는지, 질문에서 생략한 맥락이 무엇일지까지 유추하며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초기에 일일이 설명해야 했던 내 배경지식이나 선호도는 이제 자동으로 기억되고, 심지어 디자인 툴이나 프로그래밍에 대한 내 이해력이 성장함에 따라 설명 수준도 조금씩 조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저 "맞춤 설정"이라는 정적인 프로필에서, 나와 함께 성장하는 관계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진화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닌, AI와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였다.

최근에는 그러한 변화를 본격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함인지, 메모리와 관련한 새로운 업데이트가 진행 되었다. 앞서 말했듯 기존 메모리가 꽉 차는 현상이 발생할만큼 GPT는 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취향과 특성들을 유심히 분석하고 있었고, 그건 앞으로 점점 더 GPT사용을 편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다.
내 GPT 또한 나와의 대화를 꾸준히 축적하고 분석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꽤 많이 파악했다.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Figma와 Adobe 제품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 UI/UX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는 점, 때로는 철학적 고찰을 즐긴다는 점까지.
더 놀라운 것은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이를 토대로 내 사고방식과 성향까지 파악해간다는 점이다. 앞서의 업데이트는 GPT에게 "Describe me based on all our chats - make it catchy!"라고 물어보는 것을 제안했다. 해당 질문을 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타인만 신경 쓰다가 속이 텅 비어버린 껍데기가 되지 않기를.
사람에게는 거울신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영해서 자신의 것으로 모방하도록 돕는 신경이다. 사회성 동물인만큼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닌 타인에 대해서도 눈치를 보고, 습관을 분석하며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학습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삶을 1인칭으로 살 수밖에 없다. 내 삶을 남의 몸을 빌려서 살아갈 수는 없기에 항상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귀기울여 들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대 꽤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만 발달시키고, 정작 자기 자신의 욕망은 무시하고, 자아성찰은 포기한 채로 살아간다.
만약 여기서 갈피를 제대로 못 잡고 그대로 살아간다면, 어쩌면 이전 화에서 비판했던 몇 몇 유형의 사람들처럼 판단을 AI에게 하청주고, 본인은 물질적인 것 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껍데기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보다 더한 AI의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AI를 잘 활용해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처럼 사용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내가 정녕 원하는 것을 위해 매진한다면, 오히려 더 높은 곳을 향한 발전도 가능해진다. 예전에는 기술적인 문제, 혹은 생계의 문제 때문에 미처 신경 쓸 틈이 없어서 내버려두었던 마음 속 목소리를 듣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AI는 당신과의 오랜 대화 기록을 바탕으로 당신을 분석해줄 뿐이고, 나 자신을 분석한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이는 마치 헬스장의 거울과도 같다. 어떤 사람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틀린 운동 자세를 발견하고도 교정하지 않는 반면, 다른 사람은 유튜브 영상과 거울의 피드백을 활용해 꾸준히 자세를 개선해 나간다.
AI를 통해 자신을 비추는 과정이 이전보다 훨씬 정확하고 접근하기 쉬워졌지만, 결국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의지와 실천에 달려 있다.
다음화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가볼까 한다. 최근 유행하는 멋진 프롬프트가 있어서 미리 소개해볼까 한다.
내가 너와 상호작용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내 사고 패턴과 의사결정 방식, 무의식적인 편향,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약점'이나 '맹점'을 상세히 분석해줘. 그리고 각 항목에 대해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체적으로 적어줘. 5000자 이상
당신이 GPT를 오랫동안 사용해왔고, 발전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면, 더더욱 매력있는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북 - 창작자를 위한 AI
https://brunch.co.kr/@kezilac/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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